- 정민 『다산선생 지식경영법』, 31p

 

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.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융화되어 하나가 된다.

푹 젖지 않으면, 읽으면 읽는 대로 다 잊어버려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이 별 차이가 없다.

 

소나기가 내릴 때는 회오리바람이 불고 번개가 꽝꽝 쳐서 그 형세를 돕는다.

빗줄기가 굵은 것은 기둥만하고, 작은 것도 대나무 같다. 다급하기는 화분을 뒤엎을 듯하고, 사납기는 항아리로 들이붓는 것 같다. 잠깐 사이에 봇도랑은 넘쳐흘러 연못처럼 되니 대단하다 할 만하다.

 

하지만 잠깐 사이에 날이 개어 햇볕이 내리쬐면 지면은 씻은 듯이 깨끗해진다.

땅을 조금만 파보면 오히려 마른 흙이 보인다.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. 연못처럼 고였던 것이 능히 푹 적시지 못했기 때문이다.

 

만약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성대히 교감하고 거세게 장맛비를 내려, 부슬부슬 어지러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리게 되면, 땅속 깊은 데까지 다 적시고 온갖 사물을 두루 윤택하게 한다.

이것이 이른바 푹 젖는다는 것이다.

 

책 읽는 것 또한 그러하다.

서로 맞춰보고 꿰어보아 따져 살피는 공부를 쌓고, 그치지 않는 뜻을 지녀, 푹 빠져 스스로 얻음에 이르도록 힘써야 한다.

이와 반대로 오로지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만을 급선무로 한다면, 비록 책 읽는 소리가 아침저녁 끊이지 않아 남보다 훨씬 많이 읽더라도 그 마음속에는 얻은 바가 없게 된다.

이는 조금만 땅을 파면 오히려 마른 흙인 것과 한가지 이치다. 

깊이 경계로 삼을 만하다.

 

- 이덕수 『유척기에게 준 글』, 『서당사재』

 

by enjoyit 2020. 3. 5. 06:21